I.
주역의 대가, 야산의 제자 김석진 선생의 책에 따르면,
사서삼경의 학문체계를 요약하면
(15세에 이르러)
먼저 대학으로 학문의 기본을 세우고
중용으로 마음을 집중하고,
맹자로 논법을 익히고
논어로 덕성과 예를 닦고
시경으로 마음의 감흥을 풀고
서경으로 옛 성인의 정치를 본받고
역경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지혜를 열어
인격과 학문의 완성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동양 최대의 경전이자 철학서인 역경에서부터
모든 학문이 비롯됨으로 예로부터 이 역경을 '만학의 제왕' 또는 제왕학이라 하였다.
(물론, 사전 학습격인 천자문과, 8세에 이르러 사자소학, 계몽편, 동몽선습, 통감이 이에 앞선다.)
II.
울곡 이이는 격몽요결 독서장에서
배우는 자는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하여 사물에게 이김을 당하지 않게 하고, 반드시 모름지기 이치를 궁구하여 선을 밝힌 뒤에야 마땅히 행할 길이 분명히 앞에 있어서 진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에 들어감은 이치를 궁구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고, 이치를 궁구함은 책을 읽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으니, 성현의 마음을 쓴 자취와 선과 악의 본받고 경계해야 할 것이 모두 책에 쓰여 있기 때문이다.
무릇 책을 읽는 자는 반드시 단정히 손을 모으고 무릅을 꿇고 앉아서 공경히 책을 대하여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다하면 자세히 생각하고 함영하여, 깊이 의취를 이해하고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구해야 하니, 만일 입으로만 읽어서 마음에 체득하지 않고 몸으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책은 책대로이고, 나는 나대로 일 것이니,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먼저 소학을 읽어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높이고 벗을 친히 하는 도리에 대해 일일이 자세히 익혀서 힘써 실행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 대학과 혹문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자기 몸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도리에 대해 일일이 참으로 알아서 성실히 실천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 논어를 읽어 인을 구하고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며, 본원을 함양하는 공부에 대해 일일일 자세히 생각하고 깊이 체득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 맹자를 읽어, 의리와 이익을 밝게 분별함과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는 말에 대해 일일이 밝게 살펴서 확충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 중용을 읽어, 성정의 덕과 미루어 지극히 하는 공부와 천지가 제 자리를 얻고 만물이 생육하는 미묘한 이치에 대해 일일이 그 뜻을 터득함이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 시경을 읽어, 성정의 간사함과 바름과 선안의 칭찬하고 징계함에 대해 일일이 깊이 생각하여 선한 마음을 감발하고 악한 마음을 징계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 예경을 읽어, 천리의 절문과 사람이 행해야 할 의칙의 도수에 대해 일일이 강구해서 섬이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 서경을 읽어, 이제(요,순)와 삼왕(우,탕,문/무)이 천하를 다스린 대경대법에 대해 일일이 요령을 알아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다음에 역경을 읽어, 길흉과 존망, 진퇴와 소장의 기미에 대해 일일이 관찰하여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 춘추를 읽거, 성인이 선을 가리고 악을 벌주며, 억양하고 조종한 은미한 말씀과 오묘한 뜻에 대해 일일이 자세히 연구하여 깨닫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오서와 오견을 돌려가며 익숙히 읽어 이회하기를 마지 않아서 뜻과 이치로 하여금 날로 밝아지게 하고, 송나라의 선현들이 지은 책에 근사록,가례, 심경, 이정전서, 주자대전, 어류 및 기타 성리설 같은 것을 마땅히 틈틈이 정독해서 뜻과 이치로 하여금 항상 내 마음에 젖어들어 어느 때고 간단함이 없도록 하고, 남은 여가에 또한 역사책을 읽어 옛날과 지금의 일에 통하고 사물의 변에 통달하여 식견을 신장시켜야 할 것이다. 이단잡류의 바르지 못한 책으로 말하면 잠깐 동안이라도 펼쳐 보아서는 안된다.
무릇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한 책을 익숙히 읽어서 의취를 다 깨달아 꿰뚫어 통달하고 의심이 없은 뒤에야 다시 다른 책을 읽을 것이요, 많이 읽기를 탐하여 얻기를 힘써서 바삐 섭렵하지 말아야 한다.
III.
주자는 성현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안내서로 유학 경전을 가장 중시하였다. 우주의 모든 만물에 도와 이치가 부여되어 있지만, 성현이 작성한 경전이 이를 가장 분명하게 요약하고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전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였다. 주자는 경전을 올바로 읽어 만물의 이치를 터득할 수 있는 독서법을 개발했는데, 이것이 "주자어류"에 수록되어 있다.
국역에 따르면,
만약 사서를 철저히 읽지 않고 곧바로 역사서를 본다면, 마음 속에 일정한 기준이 없어 대부분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1)
책을 읽을 때에는 먼저 익숙하게 읽어서 책 속의 말이 나의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정밀하게 생각해서 그 뜻이 모두 나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처럼 만든 다음에야 깨달을 수 있다. 2)
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대학을 읽어 규모를 확정하고, 다음으로 논어를 읽어 근본을 세우며, 다음으로 맹자를 읽어 전개를 살피고, 다음으로 중용을 읽어 옛 사람의 오묘한 곳을 구하게 하였다. 대학은 등급과 순서가 하나로 총괄되어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먼저 보아야 한다. 논어는 비록 실제적이지만 내용이 산발적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읽기는 어렵다. 맹자에는 사람을 감흥시켜 마음을 북돋는 내용이 있다. 중용은 읽기 어려우므로 다른 세 권의 책을 읽은 다음에 보아야 한다. 3)
오늘날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속에 먼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생각을 설명한다. 만일 책 속에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지않는 것이 있으면 억지로 짜맞추어 일치하게 만든다. 4)
성인의 경전이 주인이라면 주석은 하인과 같다. 오늘날 사람들은 주인을 알아보지는 못하고, 먼저 하인을 통해 이름을 알려야 비로소 주인을 알아보니, 경전을 먼저 읽는 것만 못하다. 5)
해설을 정리하면,
주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경전은 대학, 논어, 맹자, 중용으로 구성된 사서였다. 그 이유는 경전 중에서 논리가 가장 명료하여 이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책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주자는 사서를 완전히 익힌 다음에 주역, 시경, 서경, 예기, 춘추로 구성된 오경을 읽도록 하였다.
역사서는 사서와 오경을 익숙하게 이해한 다음에 읽도록 하였는데, 그 이유는 역사서는 만물의 이치와 과거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담고 있어서 경전에 비해 산만하다는 것이다. 1)
주자는 책을 무작정 많이 읽는 것보다 독서의 범위를 제한하여 익숙하게 읽는 것을 중시했다. 주자가 살았떤 남송 시대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여 많은 책이 출판되었고, 지식인들 사이에는 많은 책을 섭렵하려는 풍조가 생겨났다. 그러나 주자는 읽는 분량이 적더라도 집중력을 가지고 읽을 것을 권했다. 2)
주자는 사서 내에서도 순서를 정하여 대학, 논어, 맹자를 먼저 읽고 중용을 제일 나중에 읽도록 하였다. 그 이유는 교과과정을 빨리 끝마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방향을 잃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3)
주자는 책을 읽기 전에 마음을 안정시켜서 고요한 물과 밝은 거울처럼 만들라고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고요히 앉아 있는 공부, 즉 정좌를 권했는데, 하루 중 반나절은 정좌를 하고 반나절을 독서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그리고 반드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열린 마음이란 글을 읽기 전에 그 내용을 미리 단정하거나 추측하지 않는 텅 빈 마음을 의미한다. 만약 자신의 편견을 가지고 책을 보게 되면, 결국은 성인이 표현한 도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는 근거만 쌓게 된다는 것이다.
주자는 지적인 사람일수록 열린 마음을 갖기 어렵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관념이나 신념이 강하다는 것이다. 주자가 강조한 독서법은 다른 사람의 관점 뿐만 아니라 자신의 관점까지 의심해보는 태도였다. 4)
주자는 경전의 본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지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경전의 주석을 중시하였다. 그렇지만 주석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거나 경전의 본래 의미를 생각지 않고 주석에 의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주자는 제자들에게 먼저 경전 자체를 가지고 씨름한 다음에야 주석의 풀이를 참고하도록 당부하였다. 그리고 주석을 참고할 때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할 것을 강조했다. 5)
해설을 요약하면,
1) 사서를 먼저 읽어라
2) 반복하여 익숙해질 때까지 읽어라
3) 이해하기 쉬운 글부터 읽어라
4) 마음을 깨끗하게 쓸고 닦은 후에 책을 읽어라
5) 주석보다 경전을 먼저 읽어라
주자의 독서법은 조선의 유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고, 왕세자 교육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시강원의 세자 사부를 비롯한 시강관들이 늘 강조하던 것이 바로 주자의 독서법이었으면, 강학의 순서도 주자가 제시한 순서를 따라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강원의 강하가 교재에는 소학과 더불어 대학혹문, 역학계몽, 주자서절요, 주서백선과 같이 주자가 편찬한 책이나 이를 요약한 선집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를 보면 주자와 그의 학문이 왕세자 교육에 미친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 동양 고전 독서법 또는 강학의 순서|작성자 Avalokita